일의 보람과 조직 내 관계를 중심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근로관을 분석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근로관의 국제비교]에 따르면 31개 나라의 근로관은 크게 자아실현형, 보람중시형, 관계지향형, 생계수단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① 자아실현형: 일의 보람과 관계의 만족이 모두 평균 이상
② 보람중시형: 일의 보람은 평균 이상, 관계의 만족은 평균 이하
③ 관계지향형: 일의 보람은 평균 이하, 관계의 만족은 평균 이상
④ 생계수단형: 일의 보람과 관계의 만족이 모두 평균 이하
각 근로관의 대표 유형으로는 자아실현형이 미국, 보람중시형이 프랑스, 관계지향형이 일본, 그리고 짐작했겠지만 생계수단형은 우리나라 한국이었다.
내가 화나는 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일하는 시간이 많은(지난 5월 포브스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1위였다.) 하는 나라면서도 왜 항상 노동, 직업, 일 이런 삶의 가장 밀접하고 중요한 요소들에 있어서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그렇게 못사는 나라도 아니지 않은가!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일의 흥미와 기술 향상의 기회가 적을 뿐 아니라 일의 만족도와 직장에 대한 충성심도 낮았다.’며 이는 ‘근로가 삶을 풍부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즉,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을 하지만 정작 일에서 보람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다 조직 문화조차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생계수단형,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결론에서 우리나라가 생계수단형 근로관을 갖게 된 것은 ‘불안과 냉소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고용 불안과 소득ㆍ일자리의 양극화 추세는 개인을 (자신의 일에 대해서) 더욱 냉소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조직이 개인보다 우선이라는 위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도 일의 보람과 관계의 만족을 저해한다며 ‘한국처럼 일이 생활의 중심에 있는 나라일수록 피폐한 근로관의 부정적 효과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지도층과 기업가들은 늘 성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회 복지나 행복한 삶과 같은 문제는 일단 파이를 충분히 키우고 난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해야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행복할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걸까?
아마도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일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경제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에 대한,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어쩌면 대통령이 아무리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편다 할지라도 이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소용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아직도 우리보다 덜 일하는 나라보다 생산성이 낮은 것은 우리가 일을 ‘먹고 살기 위해서, 잘리지 않기 위해서’ 하기 때문이다. 일에서 행복을 느껴야 생산성도 증가한다고 주장한다면 왜 뻔한 소리를 하냐고, 누가 몰라서 안하냐고 반문할 것인가? 각자가 일에서 행복을 찾으면 될 거 아니냐고 소리칠 것인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우리가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탓이 아니다. 이렇게 죽도록 일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수단형 근로관을 갖게 된 것은 근로자의 탓만이 아니다. 보람도 없이 여유도 없이 여가도 없이, 가정보다 일을 소중히 여기며 소처럼 일만 하기를 원하는 것은 근로자가 아니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내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느냐로 근로자의 성실성이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근로자가 아니다. 이윤을 충분히 남기면서도 직원을 고용하는데 인색하고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만을 원하는 것은 근로자가 아니다. 상사나 경영진에 거역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마치 군대와 같은 조직 문화를 조성하고 그것을 ‘효율’이라고 부르고 좋아하는 것은 근로자가 아니다.
온 국민이 일만 하고 보람도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을 만든 너는...
누구냐,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