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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9. 22:18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학교 급식에 미국산 쇠고기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막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다음의 상황은 쇠고기 수입이 개시되고 한미 FTA가 통과된 후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우리 정부나 지자체가 미국산 쇠고기를 급식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보게 될 것이다.

A시라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A시는 학교 급식 업체를 선정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으로 학교 급식을 거부하고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을 고려해 2011년부터 급식재료 공급 업체를 국내산 쇠고기 유통업자로 한정했다.

A시는 어린아이들의 건강과 안전과 직결되는 학교 급식에 있어 재료 공급 업체를 선정하는데 지자체가 관여할 수 있으며 학교 급식만큼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국산만을 사용한다는 조례를 제정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즉각 환영했고 지역 언론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A시의 민심은 좋아졌고 다른 지역에서도 A시를 따르자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A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고 가장 진보적인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A시가 우호적인 민심에 즐거울 새도 없이 A시는 국제중재에 회부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 유통을 담당하는 업체가 A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으로 국제중재에 회부한 것이다. 원래 국제중재는 피소자(A시)가 동의하지 않는 한 국제중재 성립이 불가능하다. 중재라는 것이 원래 재판의 개념과 다르다. 재판은 누가 고발하면 고발당한 입장에서는 일단 재판정에 출두해야 하지만, 중재는 누가 고발(?)을 해도 고발당한 쪽이 동의하지 않으면 ‘중재’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는 협정은 국제중재 동의서를 이미 협정문 안에 포함하고 있다. 즉 사건이 터져서 누가 고발하는 순간, 국제중재에 동의한다는 동의서에 이미 사인을 한 이상 꼼짝없이 국제중재에 불려나가야 한다.

그래서 A시는 국제중재에 불려나갔고 의도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만 급식 재료 공급 업체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시장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무역을 방해했다는 죄로 유죄! 결과는 엄청난 과징금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 업체도 선정대상에 포함시키라는 판정이었다.

(버시바우 대사의 말에 따르면) 감정적이며 무지한 -다른 말로는 알지도 못하면서 성질만 더러운-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국제중재의 판정에 분노했고, 인터넷 상에서는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먹을 음식 재료조차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성토와 함께 강대국의 대리인 노릇을 하는 국제중재에 따를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으며 2008년의 촛불을 다시 밝히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미 2008년 여름 촛불의 뜨거운 맛을 본 정부는 이런 여론을 감당하지 못했고 해당 지자체를 옹호해 국제중재에 따를 수 없다고 공식 입장 표명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헌법에 따라 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있으며 학교 급식 선택에 관해서는 지자체의 권리가 있다는 A시의 지방자치 조례를 근거로 내세웠다.

국민들은 정부를 지지했고 드디어 정부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칭찬했으며, 미국을 향해 ‘봤냐? 우리는 너네들 밥이 아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FTA 협정문을 들어 보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해 넣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국제중재 판정에서 피소된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는 것. 헌법이고 조례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는 국제 조약의 원칙에 위배되지만 그래도 사인했으니 지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바로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에 대해 높은 보복성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특히 한미 FTA 이후 미국 시장에서 파이를 키워가던 국내 자동차 산업의 타격은 컸다.

WTO는 무역보복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무역보복은 국제 무역에서 금지된 것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미국은 협정문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를 비웃을 뿐이었다. ‘봤다. 역시 너네는 우리 밥이야.’라는 표정으로...

한미 FTA에서는 국제중재 판정 결과를 준수하지 않을 때, 무역보복이 가능하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손쓸 도리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의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보복을 견디지 못하고 국제중재의 판정을 따라야 했다. 과징금도 납부했고 급식 재료 업체 선정 대상에서의 미국산 쇠고기 제한도 풀었다. 게다가 국제 사회에서는 자신들이 사인한 협정문조차 지키지 않으려 했다는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가상의 상황을 실제 상황으로 만들 수 있는 한미 FTA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한미 FTA는 국제중재 동의서를 협정문 안에 포함시킴으로서, 외국인 투자자는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도 대한민국을 국제중재에 회부 가능하며, 이 경우 대한민국은 국제중재에 불려나가야 한다.

2. 한미 FTA는 국제중재 판정에서 피소된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이는 국제 조약의 원칙에 위배된다.

3. 한미 FTA는 국제중재 판정 결과를 준수하지 않을 때, 무역보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무역보복은 WTO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한미 FTA 핸드북(송기호 저, 녹색출판사)에 따르면 이 세가지 특징을 가진 FTA는 이제껏 다른 나라들이 맺은 FTA 유형 중 가장 불합리한 것이다. 이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4년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맺은 북미 FTA였다. 이때 미국인들은 이를 두고 '북미 FTA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미 FTA 이후, 특정 산업에서는 미국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는 이득을 볼 것이다. 국가 신인도가 높아지면 국내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데 이익이 될 것이다. 우등 산업과 기업에겐 더욱 큰 시장이 제공될 것이고 열등 산업과 기업은 축소 퇴출될 것이다.

솔직히 국가 전체의 경제적 손익을 따졌을 때, FTA가 득이 될지 해가 될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학력과 학식도 있고 지위와 연륜도 있는 분이 쇠고기 수입되면 소비자는 안 사 먹고 급식 재료는 정부가 통제하면 되는 걸 왜 난리냐고 하는 말을 듣고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야동을 봐야 할 시간에 사무실에 남아 이러고 있는 이유다.

이 글은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여부를 밝히기 위한 글이 아니며 미국산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입 찬반여부에 대한 내 의견을 밝히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비록 내 의견이 있다 해도 여기서는 아니다- . 다만 급식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의 오류를 밝히고 싶었을 뿐이다.

상식이라고 믿는 것이 늘 적용된다고 믿지 말자.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권리이고 우리 자녀들의 먹거리를 지키는 것은 어른들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 당신의 상식인가?

그 정도 상식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상식을 뛰어넘는 협정문이 탄생하는 것이다. 쇠고기 수입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한미 FTA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에 작용하게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해보자는 말이다.

< 여기에서 설명하는 한미 FTA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송기호 저 [한미FTA 핸드북]을 참고했으며 책의 성격상 반 FTA적일 수 있습니다. 진실이 아니거나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지적바랍니다. 수정하거나 필요시 글 자체를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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