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이들을 ‘쓸모 있는 바보들(useful idiots)’이라 불렀다. 개명(開明) 천지에 4300년 전 단군의 뼈를 찾았다고 선전하면서 단군릉을 만들어 인민에 경배시키는 북한을 ‘민족정통성’을 존중하는 자주 정권이라 하고, 강대국과의 동맹외교를 ‘외세(外勢) 의존적’이라 주장하는 어설픈 지식인들, 그리고 북한 정권의 천인공노할 동족 집단살해 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불법시위자에 대한 구타를 인권탄압이라고 들고 일어서는 사이비 인권주의자들, 기계적 평등만이 인간존엄성 보장이라고 우겨대는 철없는 자칭 사회개혁주의자들 등이 바로 레닌이 말한 ‘쓸모 있는 바보’들이다.
-이상우 한림대 전 총장 (2004년 2월 12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쓴 글 일부)-
나는 이들을 쓸모없는 똑똑이들(useless prigs)라고 부른다. 이들은 지식인으로 행세하며 학벌과 단단한 사회적ㆍ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기득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여기는 못된 습관이 있다.
이들은 학문ㆍ정치ㆍ경제ㆍ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있으며 그에 걸맞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과 정보는 그들의 기득권을 형성ㆍ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진실을 왜곡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 실상 이들의 엘리트적 사고라고 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구체적인 행동 양상을 보면, 권력에 쉽게 굴종하며 변화를 두려워한다. 특히 독재 권력일수록 자발적인 굴종을 보이는데, 이는 독재 권력일수록 엘리트층의 자발적 굴종에 대해 ‘기득권’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선험적 깨달음 때문이다.
보수를 자처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적 손해를 마다하지 않는 반보수적 행태로 미뤄본 바 보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일례로 이들은 국가적ㆍ역사적 과제인 친일행위 문제에 대해 반민족적ㆍ반국가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친일파가 자신들 기득권의 태생적 뿌리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하지만 실상 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사상적 개념은 냉전시대 미국을 주축으로 한 강대국 의존을 위한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행태는 민주주의보다는 봉건주의나 절대군주제에 더욱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대신 냉전체제가 끝난 후에도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주로 사회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무리들을 ‘반민주적’이라고 매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때 ‘반민주적’이라는 말은 ‘빨갱이’ ‘좌파’ ‘공산당’이라는 말로 대체되거나 또는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외세 의존적인 경향이 강한 것은 과거 국가 위기 상황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한 의리 때문만은 아니다. 간혹 현재에 외세와의 우호적인 관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치ㆍ경제적 이익을 말하지만 이 정치ㆍ경제적 이익이라는 것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 김칫국’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단지 다른 국가와 교섭할 때 쉽게 기득권과 결탁하는 ‘외세’의 특징을 알고 이런 수혜를 계속 받고 싶을 뿐이다.
‘외세’는 그 특성상 그들이 상대하는 국가의 미래보다는 현재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익이 무엇인가에 더욱 큰 관심이 있고 이런 이익을 쉽게 얻기 위해서 그 나라의 기득권을 포섭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또 인권에 대해 매우 둔감한데, 이는 인권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권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되며 당연히 지켜져야 할 마땅한 권리라고 여기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인권이란 자본에 의해 부여되며 자본에 의해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이 없는 사람은 인권도 없으며, 인권을 지키고 싶다면 인권 운운하는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해서 자본을 얻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천민 자본주의적’ 신념을 갖고 있다.
이렇듯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기득권 방어를 위해 지식인 또는 지도층으로서 얻게 된 지식과 정보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있는 자칭 사회지도적 보수인사들 등이 바로 내가 말하는 ‘쓸모없는 똑똑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