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 일어나세요"
안전한 대중교통 이용 문화 정착되기를
[부산소비자신문, 23.1.31.]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오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문화 중 하나가 시내버스를 탔을 때 차량이 정차하기 전에 승객들이 일어나서 입구 쪽에 서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외국에서 버스를 타보면 차량이 완전히 정차하기도 전에 일어서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격이 급하다는 점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농담처럼 웃어 넘길 사안은 아니다. 차량이 운행 중에 서서 이동하다가 급정거 등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넘어져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버스는 기둥과 좌석 등받이 등 딱딱하고 돌출된 부분이 많아서 머리 등을 부딪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운행하는 버스의 실내에는 반드시 차량이 완전히 정차한 후 일어나라는 안내문이 매우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여전히 사람들은 차량이 멈추기 전에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빨리 내리려는 사람들의 심리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버스 정류장에서 급하게 출발하는 버스 운행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정차 후 문이 열리자마자 재빠르게 내리지 않으면 곧 문을 닫고 출발해버리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한 달 전 쯤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중 유사한 경험을 했다. 그날은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게 되었다. 나 역시도 혼자 탈 때는 버스가 멈추기 전에 일어서서 내릴 준비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어린 자녀들이 있을 때는 안전을 위해 버스가 정차한 후에 일어나도록 한다. 벨을 누르고 정류장에 정차한 후에 아이들을 일으켜서 통로로 나가는데 버스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내리겠다고 외쳤지만, 버스 기사가 듣지 못하였는지 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주변에 다른 승객도 같이 소리를 쳤지만, 웬일인지 버스는 벌써 문을 닫고 정류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노래방에서도 쓰지 않던 복식호흡까지 쓰며 "기사님"을 여러 번 외친 후에야 버스는 다시 멈추고 문이 열렸다. 이 버스 역시 내부에는 차량이 완전히 정차한 후 일어나라는 안내문구가 있었다. 저런 안내문을 붙여 놓고 왜 이렇게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뭘 잘못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랑이를 벌일 수 없어 두말 하지 않고 내리기는 했지만 놀라서 토끼 눈이 된 아이들을 보며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자체의 대중교통 담당 부서와 버스 운송회사의 고객센터에 항의 민원을 제기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혹여나 해당 버스기사의 신상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그만 두고 말았다.
2010년 전주지방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버스 운행 중 넘어져 다친 승객이 버스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있다. 승객 K씨는 자녀 2명을 데리고 버스에 승차하였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차량이 출발하는 바람에 넘어져 다치고 말았다. 당일 비가 내려서 바닥이 미끄러웠던 것도 이유였다. 이에 법원은 K씨에게 치료비와 위자료 등 총 총 9백4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또한 그 자리에 있던 자녀 두명에게는 위자료 각 30만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하였다. 이마저도 승객 K씨도 버스의 손잡이를 잡는 등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30%의 과실책임을 부담한 결과였다.
이와 비슷한 소송 사례는 적지 않다. 2021년에도 대법원은 시내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일어나 가방을 메다 넘어져 다친 승객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승객의 고의를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버스회사와 전국버스운송조합의 책임이 면제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최근 버스 내부에 정차하기 전에 일어나지 말라는 안내문이 많이 붙은 것도 이러한 사고 발생 시 버스회사의 책임을 면책 또는 감면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내문을 아무리 많이 붙여 놓아도 실제로는 정차한 후에 일어나는 승객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승객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디 버스는 승객을 기다려주고 승객은 차량이 정차한 후에 일어나는 안전한 대중교통 이용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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