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이폰4S를 공개하자 기다렸다는 듯 인터넷에서는 일명 앱등이와 삼엽충의 키보드 전쟁이 시작됐다. (앱등이는 애플 제품을, 삽엽충은 삼성 제품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비하하며 부르는 말이다.)
한쪽에서는 아이폰5를 기다렸던 소비자들을 우롱했다며 애플을 비난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언제 애플이 아이폰5를 발표한다고 했냐 또는 아이폰4S도 나름 의미가 있다며 애플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진의를 의심했다.
인터넷 선을 잘라버리기 전엔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전쟁은 다음날 멈춘다. 스티브잡스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양측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임시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모두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소송에 휘말려 있는 경쟁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전자는 “고인은 세계 IT산업에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끈 천재적 기업가였으며, 그의 창조적 정신과 뛰어난 업적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조의문을 공식 발표했다.
구글도 홈페이지에 '스티브 잡스, 1955 - 2011'란 문구를 표시하며 특유의 감성 넘치는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스티브잡스를 기리는 이유는 그가 세상에 선보인 제품들이 그만큼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실패한 제품들도 있지만 매킨토시, 픽사 애니메이션, 아이팟, 아이폰 등은 세상을 바꿨다는 평이 아깝지 않다.
잡스의 마지막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 아이폰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현재 진화 중인 제품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성능을 주장하는 경쟁 제품들이 등장하는 터라 평가가 힘들다.
내게 있어서 우리 휴대폰 시장에서 아이폰의 등장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폰이 바꾼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다.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에는 지금과 같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전에 휴대폰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각 통신업체가 만들어 놓은 모바일 서비스 사이트를 이용해야 했다. SKT의 준, 네이트나 KTF의 매직엔과 같은 서비스가 바로 이것이다.
통신업체는 이런 방식으로 콘텐츠 유통을 독점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무선인터넷 활성화를 가로막은 주범이기도 했다.
통신사들은 아이폰 판매를 꺼렸는데 그 이유도 바로 아이폰의 무선인터넷(Wi-Fi) 접속 기능 때문이었다. 통신사들은 소비자가 와이파이로 접속하게 되면 그때까지 데이터 통신으로 올리던 막대한 수익에 타격을 받을까 우려했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이런 통신사들을 핑계로 해외에 출시하는 모델에는 들어간 와이파이 기능을 국내 모델에서는 빼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이를 ‘스펙 다운’이라고 비난했는데, 당시 모 업체는 국내 모델에는 대신 DMB 기능이 있기 때문에 스펙 다운이 아니라는 황당한 변명도 늘어놓았다.
만약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더라면 소비자들은 아직도 비싼 데이터 통신료를 물면서도 버벅대고 제약도 많은 통신사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턱없이 비싼 요금으로 조잡한 게임, 벨소리, 화보 등이나 다운로드하며 말이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모르겠지만, 외국의 소비자들은 맘껏 이용하는 모바일 인터넷을 우리만 사용하지 못했을 때 느낀 분노와 참담함은... 지금 생각해도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두 번째는 아이튠즈가 만든 콘텐츠 수익구조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아이튠즈의 뮤직스토어의 수익 중 70~80%를 음원을 제공하는 음반사와 저작권자에게 지급했다.
탐욕스러운 이동통신사와 다수의 중간 상인들이 끼어든 유통구조로 정작 음원 제공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적은 국내 시장을 비춰보자. 국내 시장의 이런 기형적인 유통 시스템은 콘텐츠 생산자를 착취한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애플은 말로만 ‘상생’을 부르짖는 수많은 국내 ‘갑’ 기업들과는 달리 진정한 상생의 의미를 알고 있는 기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잡스는 갔지만, 애플은 남았다. 애플이 있는 한 혁신적인 제품들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그의 도전도 멈추지 않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