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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6. 18:43

밀린다왕은 나가세나에게 물었다.
“스님, 알면서 나쁜 짓 하는 사람과 모르고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큰 화를 입습니까?”
“몰라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더 화를 입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왕자나 대신들이 모르고 잘못을 범한다면 그들에게 갑절의 벌을 내려야 하겠습니까?”
“임금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글이글 단 쇠붙이를, 한 사람은 모르고 잡았고 한 사람은 알고 잡았다고 하면 어느 사람이 더 심하게 데겠습니까?”
“모르고 잡은 사람이 더 심하게 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르고 악행을 하는 사람이 더 큰 화를 입습니다.”



최근 인터넷 시사정치 관련 커뮤니티를 보면, 참 안타까운 모습 몇 가지가 보입니다.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사안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사안인데, 그에 대해 알려고 충분히 공부하거나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판단을 고착화시켜 버리는 경우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습득한 지식이 있겠지만, 인터넷에서의 정보 습득은 '정보 수취자'가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편향, 편집적인 경우가 많아 '공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죠. 게다가 그 정보 습득의 원천이 '정보 왜곡'이 심한 웹사이트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한번 자신의 마음을 정하고 그것으로 토론을 시작하면, 나중에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도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기존에 토론을 벌이면서 자기가 한 말들이 있거든요. 나중에 생각을 바꾸게 되면 그동안 자기가 가진 생각들이 '틀린'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리학 이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자신이 한번 선택한 결정에 대해서는 더 집착하고 옹호하는 심리학적 태도인데요. 예를 들어, 카메라나 자동차를 샀을 때, 사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점이 보이고, 단점은 별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 해보신 적 있을 겁니다. 동호회에 가보면 그런 현상을 잘 관찰할 수 있습니다. 기계화된 일관성의 함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부족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옹호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공정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토론이라는 게, 자신의 생각이 틀렸으면 인정하고 수긍할 줄도 알아야 가능한데, 일관성의 함정에 빠져 그러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게 왜 위험하냐면, 사람은 살면서 배움과 경험의 폭이 늘어나서 인격적으로나 지적으로 성숙하게 되는데요, 자기의 잘못된 판단을 옹호하느라 그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거든요. 나이는 많은데 자기 아집에 빠져서 도무지 말도 안 통하는 고집불통 막무가내 어른들이 바로 그렇게 탄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더욱 위험하죠.


실제로 인터넷에서도 보면, 같은 주장을 반복적으로 올리시는 분이 있습니다. 분명 처음 그 글을 올렸을 때, 밑에 댓글도 달리고 서로 반박과 재반박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자신의 생각에 부족한 점도 발견하고 또는 보완 수정할 부분도 발견했을 텐데, 얼마 있다가 올리시는 글을 보면 전에 올렸던 생각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것을 발견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학습 능력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옹호하고자 하는 강박증 때문에 자기 생각의 오류를 지적당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남을 어떻게든 이겨야겠다는 ‘오기’만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생각 안에서만 논리가 자가발전하게 되고, 결국 ‘궤변’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완벽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토론 자체가 불가능한 한심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편향되어 토론이 불가한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지요.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내리면, 자신이 편하거든요. 자신의 생각은 맞는데, 이정토가 이상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하면 얼마나 편합니까. 


개그콘서트에 멘붕스쿨 보셨나요? 거기에 보면 “말이 안 통해요”라고 소리치는 여학생이 나오는데요, 바로 딱 그 모양새입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릴 하고, 그것을 이해 못하는 선생님에게 도리어 소리치죠. “말이 안 통해요”


사실,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셀 수조차 없는 많은 글이 올라갑니다. 어떤 논쟁도 그 하루를 넘기지 않습니다.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펼치시려 나름의 노력을 하시는 분들은, 악의적이진 않지요. 본인의 생각이 옳건 그르건, 논리적이건 비논리적이건 그걸 글로 표현하는 건 본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지식과 논리를 가지고 논쟁에 맛을 들이시면, 나중에 진짜로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게 될지도 모릅니다.


위에 나가세나 스님의 가르침을 보면, ‘모르고 하는 잘못’이 더욱 위험하다고 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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