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노부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사망 후 확인한 통장 잔고에는 3천원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유서는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향해 그토록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유서에는 그 외에도 시신을 대학교 연구용으로 기증한다는 바람과 (그러나 사망 이후 시간이 경과된 후 발견돼 시신 기증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살면서 빚은 한푼도 없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노부부가 가난했지만 선한 사람들이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노부부는 별다른 경제 활동 없이 두사람 몫으로 나오는 월 15만원의 노령연금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자녀가 있지만 사망 소식을 듣고도 오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관계가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주변 이웃과도 거의 교류가 없었다고 합니다.
가난과 외로움이 늙은 부부로 하여금 스스로 목을 매게 한 것입니다.
그 죽음을 알리는 기사에는 많은 '애도'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생활고였기 때문에 미흡한 노인복지 문제를 지적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기사에도 악플이 달렸습니다. 자살을 하면서도 남한테 빚이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시신이나마 연구용으로 기증하겠다는 이 불쌍한 노부부에게 대체 왜 악플을 다는 것일까요.
의문을 품고 댓글을 보던 중 하나의 글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내용은 "지금 젊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에 비해 2배는 더 일하고 있어요. 나이든 사람만 생각하지 마세요. (중략) 사대강이든 뭐든 개발해서 먼 미래에 잘 살게 되었으면 좋겠지 눈앞에 보이는 복지를 이뤄야 할 것 같지 않네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악플 다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분노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일하는데도 잘 살지 못하는 이유가, 노인 등 복지에 쓰이는 돈이 많아서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노부부의 자살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내포한다고 생각하자 화가 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의 분노는 정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복지 예산 지출이 많아서 서민들이 힘들다는 전제가 맞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직업이 없고 재산이 없는 60대 노인 두명에게 주어지는 복지 예산은 둘이 합쳐 고작 월 15만원뿐입니다. 이걸 보고도 그들은 왜 '복지 예산이 많아서 내가 가난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세뇌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우리와 비슷한 국민소득을 가진 국가들과 비교해도 낮습니다. OECD 국가 중에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복지 예산이 많아서 국민들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관련 기사 : 우리나라 복지예산 OECD 평균 절반도 못미쳐 >
왜일까요? 기득권이, 복지 정책을 싫어하는 기득권이 "폭지 포퓰리즘이다! 과잉복지다!!"라고 외치며 국민들을 세뇌시켰기 때문입니다. 당장 포털사이트의 뉴스 섹션에서 '복지'를 검색해보면 "복지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수많은 뉴스와 사설, 정치인의 주장, 전문가 논평을 볼 수 있습니다.
복지 때문에 망할 것 같은 나라에서 직업도 없고 재산도 없는 노인 둘에게 주는 노령연금이 고작 15만원인가요? 그런 나라의 노인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인가요?
(노인 자살률 관련 기사 : http://inews.seoul.go.kr/hsn/program/article/articleDetail.jsp?menuID=001001001&boardID=177913&category1=NC1&category2=NC1_1)
우리나라는 여전히 복지 정책이 미흡한 나라입니다. 복지 예산 지출도 턱없이 모자랍니다. GDP 대비 복지예산은 OECD 평균이 20%입니다. 우리나라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6.9%입니다. 이런 명확한 수치가 있는데도, 저 사람들은 "복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거짓 선동에 놀아납니다.
저 역시 제 월급 내역서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세금은 왜이리 많이 떼가며 연금이며 보험료는 왜 이렇게 비싼 건지요. 저는 일년에 병원 한번 안 가는데 보험료는 왜 그렇게 많이 내야 하는 걸까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제가 낸 세금으로 생활비 보조금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저보다 많이 벌면서도 세금은 저보다 적게 내는 '탈세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제 세금을 빼돌려 제 주머니를 채우는 '부정부패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제 세금을 국가 발전에 도움 안 되는 엉터리 사업에 낭비하는 '무능력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기득권은 자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에 돈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걸까요? 왜냐하면 기득권은 부유한 사람들이고 따라서 복지 혜택을 직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복지 정책이 강화되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다같이 잘 사는 세상보다는 자기들만 잘 사는 세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부 국민들은 자기가 부자도 아니면서, 기득권도 아니면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기 부모님, 자기 자식들, 그리고 미래의 자기도 복지 정책의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의 주장에 세뇌당해 그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못 사는 이유도 '복지'때문이라고 악플을 달면서 말이죠. 하지만 눈을 뜨고 현실을 바로 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2배나 많이 일하면서도 월급은 적은 이유는, 바로 수익을 공정하게 나누지 않는 탐욕스러운 '기득권' 탓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제 주머니를 채우느라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에는 투자하지 않고, 뒷돈 받아먹기 쉬운 사업에만 예산을 쏟아붓는 '기득권' 탓입니다.
진실을 아는 것은 어렵고 거짓을 믿는 것은 쉽습니다. 힘있는 기득권을 비난하는 일은 어렵지만, 가난에 시달리다 자살한 힘없는 노부부를 비난하는 일은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면 우리의 삶은 더욱더 어려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