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한다는 진보 인사들이 ‘나는꼼수다’를 비판하는 글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가장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하는 이라영 씨가 한겨레 온라인 ‘훅’에 쓴 <’꼼수’와 ‘빠’>를 발견했습니다.
글 보기 : http://hook.hani.co.kr/archives/36411
읽는 재미도 있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 과제를 던져주는 좋은 글입니다. 그러나 이런 글을 읽고 나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집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 지식인이 가진 한계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늘여 쓴 이 글에서 필자가 나꼼수의 역효과(?)라고 문제 제기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파악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나꼼수는 방향을 찾지 못하던 대중의 분노를 하나로 모은다. 정권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대중에게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데 대중의 분노는 나꼼수의 ‘재미’로 인해 희석돼 버린다.
2. 대중의 영웅으로 등극한 나꼼수는, 그러나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않는다. 그저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 데만 열심이다.
3. 나꼼수 때문에 대중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는 됐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정작 중요한 것들(논리와 판단, 계급적 갈등)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냥 현 정권만 심판하면 되기 때문이다.
4. 현 정권을 열심히 비판하고 정권 교체에만 열을 올리는 것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 안에 ‘노동자 계급’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꼼수에 대한 비판만 추려 쉬운 말로 재구성해보면 이런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부조리로 인해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 분노는 계급투쟁으로 발전해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나꼼수가 가로채더니 ‘재미’를 섞어 희석시켜 버렸다.
이런 방식으로 인기를 얻은 나꼼수는 노동자, 비정규직 등 계급에는 관심이 없고 현 정권 비판에만 몰두하며 자신들이 부조리한 사회의 ‘정의’인 척한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방식으로는 정권 교체가 되더라도 사회의 변화는 어렵고 노동자 계급의 삶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 지식이 짧으면 필자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제가 아는 수준으로 이해해 버릴 수도 있어 남의 글에 반론을 제기하는 건 조심스럽거든요.
제 독해가 ‘대체로’ 맞는다는 전제 하에, 이 글의 어떤 점이 저로 하여금 진보 지식인의 한계를 느끼게 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사회 부조리로 인해 쌓인 대중의 분노를 왜 진보는 모으지 못하고 나꼼수 탓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대중은 아무데서나 모이지 않습니다. 대중은 언제나 공감대가 형성되는 곳에 모였습니다.
만약 대중이 나꼼수를 향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공감대를 형성한 대중을 탓해야지 않을까요? 저는 여기에서 흔한 진보 지식인들의 ‘편견’을 발견합니다.
바로 대중을 깨우치고 각성시켜야 할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계급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진보 지식인은 대중을 주체로 대하지 않고 역사의 객체로 대해왔습니다. 그래서 나꼼수를 향해 환호하는 대중을, 나꼼수의 ‘재미난 자극’에 중독된 무지몽매한 존재로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진보 지식인은 대중이 자신들에게 모이지 않으면 대중이 무지해서 자신들의 대의를 몰라준다고 여깁니다. 자신들이 대중의 공감대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고 반성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서 나꼼수를 향해 비아냥대는 거죠. “너희는 무지한 대중에게 싸구려 카타르시스를 팔며 영웅 놀이를 하지만, 그건 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건 아냐”라고요.
진보 지식인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나꼼수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왜 대중의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하는지 고민하며 스스로를 비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보 지식인의 무능이 이 사회가 진보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무능함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짓은 그만 하길 바랍니다.
나꼼수는 노동자, 비정규직 등 계급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나꼼수가 대중에게 인기가 높기 때문에 계급 문제에 무관심하면 부도덕한 게 됩니다.
물론 나꼼수가 노동자와 비정규직, 소외받은 계급의 이야기를 해주면 더욱 좋겠지요. 예전에 나꼼수 23회에서는 주진우 기자가 쌍용차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며 ‘와락’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꼼수는 애초에 ‘가카 헌정방송’이라는 현판을 내건 팟캐스트입니다. 목적도 기존 언론이 쉬쉬하는 현 정권의 비리와 의혹들을 까발리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뒷담화’를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왜 노동자와 같은 계급 문제는 다루지 않고 뒷담화만 까며 시시덕거리냐고 비판합니다.
스포츠 채널을 보면서 왜 시사토론은 안 하냐고 화내는 격입니다. 나꼼수가 다루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진보 지식인 본인들이 다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꼼수처럼 인기도 얻고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나꼼수 녹음이 밤부터 새벽까지 이뤄진다고 합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멘트로 CBS에서 잘리고 생계형 평론가로 바쁜 일정에 시달리는 김용민 교수는 녹음 때만 되면 잡니다. 그래서 나꼼수를 듣다보면 김어준이 “일어나 돼지야!” 하고 소리치는 걸 들을 수 있습니다.
전에 나꼼수 떨거지 특집에서 노회찬이 그랬죠. 진보는 하루빨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일했던 것을 반성한다고요. 다른 정치인들이 주말도, 밤낮도 없이 뛰어 다닐 때 자신은 느긋했던 면이 있었다고요.
나꼼수는 땡전 한푼 안 받고 한달에 몇천만원의 서버 비용을 본인 호주머니를 털어 부담합니다. ‘뒷담화’라는 본연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오밤중에 에어컨이 울부짖는 녹음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보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모델 포스가 풍기는 사진을 프로필에 걸어놓고 대중은 뭔 말인지도 모르는 로고스니 파토스니 트로츠키니 운운하면서 나꼼수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써 올립니다.
너희는 왜 우리들이 중요하다고 그토록 당부해 온 문제들은 다루지 않는 거냐고 목청을 세웁니다. 왜 본인들이 할 생각은 안 하고 남한테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사회 정의를 생각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요?
노빠를 거들먹거리며 나꼼수를 비판하는 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필자는 본문에서 “나꼼수 애청자와 나꼼수 비판하는 사람으로 편가르기를 하는 흑백의 사고가 너무 쉽게 형성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입만 뻥긋해도 광분하는 ‘노빠’들처럼 나꼼수에 열광하는 이 분위기는 도무지 다른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봅시다. 필자는 나꼼수를 비판하면 욕먹는 게 편가르기라며 거기에 ‘노빠’를 갖다 대는데요. 이거야 말로 편가르기며 흑백 사고입니다.
자신들은 나꼼수를 비판해도 되지만 ‘나꼼수 빠’는 그런 자신들을 비판하면 편가르기인가요? 왜죠? 자신들은 지식인이고 ‘나꼼수 빠’들은 무지몽매한 대중이라서 그렇습니까?
진보 지식인들이야 말로 다른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꼼수를 비판하는 그들에게 ‘나꼼수 빠’는 일관되게 말해왔습니다. “거기서 뭐라고 떠들지 말고 너네도 이 세상에 뛰어들어서 얘네들처럼 움직여”라고요.
이 부분은 '들사람'님의 댓글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경솔하게 쓴 부분이라고 판단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들사람님의 지적처럼 나꼼수를 비판하는 분들 중에는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저는 마치 나꼼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모두 책상머리에 앉아서 입만 나불대는 것처럼 썼네요. 저야말로 잠시 흑백논리에 빠졌나 봅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아울러 이 글은 '대중 밖에서' 머물며 '행동하지 않는' 진보 지식인의 '나꼼수 비판'을 다시 비판한 것이므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고상하게 팬대만 굴리고 있을 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요. 안 되면 나꼼수를 모방이라도 하시길 바랍니다. 나꼼수가 계급 문제를 안 다루면 진보 지식인들이 좀 다뤄주세요. 왜 남이 차린 밥상에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고 떼를 쓰나요?
참고로 주진우 기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소송에 휘말려 있는 기자라고 합니다. 현 정권 들어 소송에서 자주 진다는 소식이 나간 후 사람들이 소송에 필요한 돈을 모금해 준다니까 자신과 자신의 회사에서 책임질 일이라며 강력하게 사양했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은 BBK 관련 소송에 휘말려 피선거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처지입니다. 김용민 교수는 라디오에서 쓴 소리 했다가 직장을 잃었습니다.
늘 안전한 곳에 앉아서 입바른 소리나 하는 분들은 나꼼수가 그냥 지들끼리 떠들고 놀다가 운 좋게 인기를 얻은 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나꼼수가 지금의 나꼼수가 된 배경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밝히고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지키려다 부당한 힘에 핍박 당하고 직장을 잃고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이런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나꼼수가 골방에 모여서 뒷담화나 까는 '이빨들'인 척하지만 실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란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라서 비판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비판 받아야 마땅하죠.
그런데 딱히 이들의 잘못도 아닌데 자기들 생각에 만족스럽지 않다고 유명 언론사의 인터넷 칼럼 코너에 아무리 잘 봐 줘도 ‘투정’에 지나지 않는 글을 써 놓습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인기가 높은 나꼼수를 비판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끌어보려는 ‘꼼수’로밖에는 안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