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lemming)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쥐의 일종인데 쥐보다 더 귀엽게 생겼습니다. 이 동물은 집단 자살로 유명합니다. 무리지어 달리다가 절벽이나 바다로 줄을 지어 뛰어내리는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이런 행동은 다른 설치류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사방으로 서식지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선두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낭떠러지나 바다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는 실은 레밍이 눈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선두가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사지로 뛰어들어도 뒤따르는 동물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바로 앞선 동물만 줄지어 따라가다 ‘집단 자살’에 이르는 것입니다.
재밌는 건 인간의 역사에도 레밍의 집단자살과 같은 현상이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대중이 리더가 잘못된 방향으로 뛰어가는 데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줄지어 사지로 뛰어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 나치 치하의 독일이 그랬습니다. 히틀러는 잘못된 신념으로 패망의 길로 달려갔지만 독일 국민들은 그를 열렬히 지지했죠. 군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힌 천황을 사모하며 아시아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일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는 어떨까요? 사회주의가 패망한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신자유주의’였습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부터 부각하기 시작한 경제적 자유주의 사조를 말합니다. 현대 복지국가의 경향에 반해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원리의 부활을 지향하는 사상적 경향이죠.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주로 노동 시장의 유연화 (해고와 감원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 작은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시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이 신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시차를 두고 일어난 수차례의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를 만나며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자유주의에 경제를 맡기는 것은 낭떠러지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거죠.
하지만 전 세계에는 아직도 수많은 리더들이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 뒤를 기득권과 자칭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따라 뛰고 있고 그 뒤를 대중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벌써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지만, 시야가 짧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 뛸 뿐입니다.
근데 여기에는 레밍의 집단자살보다 더 나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금융위기에서는 리더와 기득권은 죽지 않고 그 뒤를 따르는 대중만 죽는다는 점입니다. 맨 앞에서 뛰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들의 앞길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낭떠러지까지의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 뿐이죠.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낙하산이 있거든요. 낭떠러지를 만나면 처음에는 함께 추락하겠지만, 바닥에 처박히는 대중과는 달리 그들은 바람을 타고 안전하게 착륙할 겁니다. 그리고 바닥에 처박혀 죽은 사람들이 떨어뜨린 재물들을 챙겨서 더욱 부유해질 것입니다.
낭떠러지를 만나면 충격을 줄여줄 우산이라도 하나 들고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안정된 직업도 없고 모아둔 재산도 없는 서민들은 여지없이 바닥에 꼬꾸라질까봐 걱정입니다. 무서운 것은 이 죽음의 레이스에서는 자기 혼자만 빠져나올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