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비창, 발레곡 백조의호수 등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에서 동성애자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억지로 결혼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죽음까지도 동성애와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습니다. 1840년 태어난 그는 1893년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공식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관 뚜껑이 열린 그에게 조문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정말 콜레라로 사망했다면 불가능한 광경이지요.
그래서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타살이라는 주장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젊은 시절 상류계급의 풍조에 따라 법률학교에서 공부한 후 법무성 관리로 근무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법률학교 동기들이 차이콥스키의 동성애 사실이 자신의 모교와 자신들의 명예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해 독살했다는 주장이지요.
출처: 위키피디아, 저작권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 이미지
사회의 기득권이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위대한 음악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은, 오늘날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역사를 보면 어느 사회이건 기득권은 소수자를 필요 이상으로 핍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소수자가 갖는 힘은 미약하지만 - 왜 ‘소수자’라고 부르겠습니까 - 기득권은 마치 사회를 붕괴시킬 암적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몸서리를 치곤합니다. 곽노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에 성소수자의 차별금지 조항을 넣자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2006년 한국청소년개발원이 135명의 청소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7.4%가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2011년의 사회도 이러할진대 1800년대의 차이콥스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자살이든 타살이든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일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