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이 ‘우생순’보다 슬플 수밖에 없는 5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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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스토리지만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킹콩을 들다’를 보면서 다음에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정작 영화가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무척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영화는 대개 흥행에 실패했다. 2002년 YMCA야구단이 그랬으며 같은 해 챔피언이 그랬고 2004년 슈퍼스타 감사용이 그랬다. 같은해 역도산도 흥행에 참패했다. 2005년 말아톤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마라톤의 드라마라기보다는 자폐증 주인공이라는 특수한 설정이 주는 드라마가 컸다. 그러던 중 2007년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4백만여명의 눈에서 감동의 눈물을 뽑아내며 대박을 터뜨리면서 국내 스포츠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9년 ‘킹콩을 들다’는 호평을 얻으면서 제2의 ‘우생순’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두 영화를 모두 본 입장에서 킹콩은 우생순을 뛰어 넘었다. 관람객 동원은 여러 가지 요소가 영향을 주므로 감히 예측하기 힘들겠지만 관객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을 짜낼 수 있는 영화는 킹콩이 분명하다. 킹콩이 우생순보다 더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 5가지를 뽑아봤다.
1. 연기하기 쉬운 종목이다.
역도는 핸드볼보다 연기하기 쉬운 스포츠다. 스포츠 영화에서 연기자들이 얼마나 실제와 가까운 경기 장면을 재현하느냐는 스포츠 영화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이다. 우생순의 연기자들을 피나는 노력을 통해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재현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빠르게 달리고 패스하고 격렬한 몸싸움을 하다가 몸을 날리며 슈팅하는 핸드볼. 국가대표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몸놀림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은 연기’라는 점을 자꾸 상기하게 만들어 몰입을 방해한다.
핸드볼에 비하면, 제자리에서 바벨을 드는 역도는 연기하기 훨씬 쉬운 종목이다. 보통의 관객이라면 킹콩의 연기자가 바벨을 들어 올리는 자세가 역도선수답지 않다는 이유로 몰입에 방해받지는 않을 것이다.
2. ‘죽음’이 있다.
죽음은 극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요소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만 보더라도 죽음은 비극을 가장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요소다. 오델로 장군은 오해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는 끝내 자살했으며, 맥베스는 제왕절개(?)로 태어난 맥더프에게 죽임을 당했다. 리어왕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딸의 주검을 안고서 슬픔을 못 이겨 죽었으며 햄릿은 사랑하는 연인의 아버지를 죽여 그 연인이 미쳐서 죽게 만들었다.
킹콩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있는 인물인 감독의 죽음은 영화 초반부에 암시된다. 의외성이나 그로 인한 충격은 없지만 마치 약속과도 같이 죽음을 예감했던 관객은 죽음과 함께 이어지는 편지 장면과 상여운구 장면에서 눈물 보를 터뜨리기 마련이다. 관객을 울리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 전개이며 연출이지만, 어쩌랴, 슬픈 걸...
3. ‘완벽한 악역’이 있다.
악역이 없는 영화는 없다. 우생순에도 악역은 있었다. 그러나 킹콩에는 ‘완벽한 악역’이 있다. 악역이 악할수록 주인공들이 겪는 시련은 혹독하고 관객이 느끼는 연민의 정도 깊다. 킹콩에서는 악랄할 뿐 선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완벽한 악역이 등장한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에도 이렇게 악하기만 한 악역은 별로 안 나온다. 사람 같지 않은 악역. 사실적이진 않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4. ‘아마추어’의 이야기다.
외국에서 성공한 스포츠 영화들을 보면 프로보다는 아마추어들의 이야기가 많다. 대학 미식축구팀, 대학 농구팀, 주니어 야구팀 등 아마추어 선수들의 이야기로 큰 감동 선사하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아마추어는 변수가 많아서 기적이 일어나기 쉽다. 그 기적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프로에선 기적이 일어나기 힘들다. 게다가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결승전에서 안타깝게 패한 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영화는 패배의 결말을 안고 있는 운명이었다. 분패했기 때문에 안타깝고 더 슬프면서도 은메달로 충분히 자랑스러운 영광의 승리가 주는 감동이 있었지만 뒤집어보면 결국 현실의 벽을 뛰어 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프로인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생긴 한계였다.
관객들은 킹콩처럼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 최후의 승자로 우뚝 선 주인공을 보면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고 싶을지도 모른다.
5. 성장 드라마다.
어른들의 삶은 복잡하다. 감정도 얽히고 설켜 묘사가 힘들다. 인물이 너무 단순하면 현실성이 없어지고 너무 복잡하면 관객을 힘들게 한다. 스토리가 번잡하고 인물이 복잡하면 감동을 주기 힘들다.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 드라마가 더 감동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우생순이 어른들의 이야기인 반면 킹콩은 아이들의 이야기다. 우생순의 어른들은 핸드볼 외에도 결혼, 가정, 커리어, 라이벌 관계와 같은 여러 가지 어른으로서의 세속적인 장애물을 고민해야 했다.
킹콩의 아이들은 못 살고 불쌍하긴 하지만 생활에 대한 고민이 스토리에 파고들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 특유의 순수함으로 스승을 한없이 믿고 따르는가 하면 쉽게 울고 쉽게 웃는다. 악역의 시련에 한없이 약하게 당하다가도 만화 같은 불굴의 투지로 이겨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