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6. 12:31
[언론기고 등]
호랑이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한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돈에 대한 탐욕’은 목덜미를 눌러야 제압
[부산소비자신문, 22.1.28.]
올해 2022년은 임인년이다.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흔히 호랑이를 동물의 왕이라고 한다. 호랑이는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동물이다. 빠르고 힘도 세다. 고양이과 동물이 그렇듯 사냥감을 발견하면 몸을 낮춰 소리 없이 접근한다. 달리는 속도는 시속 65km에 이른다고 한다. 동물원에서 먹이 주는 장면을 보았다면 알겠지만 도약력도 상당하다. 인터넷에서는 육중한 몸집으로 3m 높이를 뛰어올라 먹이를 낚아채는 장면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나무도 타고 물에서도 헤엄을 칠 수 있다.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 단숨에 동맥을 끊어 놓는 송곳니는 치명적이다. 근육질의 앞다리는 끌어당기는 힘이 아주 강하다. 한마디로 타고난 사냥꾼이다.
시쳇말로 거의 모든 '스탯( statistics의 약자, 컴퓨터 게임에서 능력을 나타내는 계량적 수치)'이 '만렙(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의 레벨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상황)'을 찍은 '사기캐(사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캐릭터)'인 셈이다. 무협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용호상박'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용과 호랑이의 싸움처럼 강자끼리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인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호랑이는 상상 속의 동물인 용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일 정도로 강한 동물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이렇게나 무서운 호랑이가 과거 한반도에는 들끓는 수준으로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 때문에 피해도 심했다. 호랑이는 민가에까지 내려와서 가축을 잡아먹고 사람을 해쳤다. 누구나 알고 있는 '호랑이와 곶감' 동화에서도 호랑이는 먹잇감을 찾아 민가의 앞마당까지 들어와 있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 비디오테이프에 삽입된 공익 캠페인 내레이션이었다. 피해가 얼마나 심했으면 마마(천연두)와 전쟁보다 호환(호랑이에게 당하는 화)이 제일 먼저 언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그래서인지 호랑이를 많이 잡으면 벼슬도 주었다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고 칭했다.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그렇게나 많다는 뜻이다.
어느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난히 '암내(체질적으로 겨드랑이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없다고 한다. 연구 결과, 겨드랑이 냄새를 분비하는 아포크린 땀샘을 활성화시키는 유전자가 유독 한국인에게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호랑이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반도에 살던 조상 중에 체취를 심하게 풍기던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혔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지만 아주 엉터리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활과 총을 쏘던 조선시대에도 호환이 심했는데, 그 옛날 원시시대는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였을까? 호랑이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한다는 낭설이 돌기도 했다. 엉터리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절 '호압사'의 설화를 보면, 이 말이 꽤 널리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정해 궁궐을 짓는데, 완성이 될 때쯤이면 밤새 건물이 허물어졌다. 전국의 유명한 목수들을 불러 모았지만 거의 다 지은 건물이 무너지는 일은 반복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태조가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궁궐 일터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괴물처럼 큰 호랑이가 나타나 거의 다 된 건물을 부수는 것이었다. 군사들이 활을 쏘아도 끄떡없이, 호랑이는 할 일을 끝내자 홀연히 사라졌다. 이에 태조가 낙담하고 있는데 이름 모를 도인이 나타나, 한강 남쪽 호랑이 형상의 산봉우리가 한양을 짓누르고 있어 이런 일이 생긴 것임을 알려주었다. 태조가 해결책을 묻자 호랑이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법이니 산봉우리의 꼬리 부분에 절을 지으면 된다고 일러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렇게 세운 절이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에 지은 ‘호압사(虎壓寺)’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짓고 있던 건물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호랑이 탓이 아니다. 순전히 사람 탓이다. 자재를 아끼고 공사 기간을 당기려는 무책임한 욕망이 원인이다. 결국 돈이다. 돈에 대한 탐욕이 괴물처럼 날뛰며,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게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 끔찍한 사고가 반복되고 세간의 비난이 아무리 거세도 결코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 괴물이다. 공사 중에 무너지는 건물도 문제지만, 똑같은 건설사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지어서 완공된 수많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있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한가. 당장 인터넷에서는 사고를 일으킨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의 하자 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벽에는 금이 가 있고 천장에서는 물이 새는 사진들이다. 태조는 호랑이 꼬리를 눌러 문제를 해결했다지만, 돈을 쫓는 욕망이라는 괴물은 목덜미를 누르지 않으면 통제가 어려워 보인다. 부실 공사로 이익을 챙긴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후분양제와 같은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올해 한 해 동안은 부디 더 이상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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