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이사 중 물품 파손 발생하면 입증 책임이 중요
이사 전후로 파손 여부 확인하고 귀중품은 따로 챙겨야
[부산소비자신문, 21.10.29.]
연말이 다가오니 아침마다 동네에 이삿짐 차량들이 많이 보인다. 때로는 커다란 포장이사 차량으로 좁은 골목길이 막혀 차를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사다리차로 짐을 오르내리는 장면을 보니 힘들게 이삿짐을 정리했던 기억이 떠올라 한숨부터 나온다. 요즘에는 포장이사가 있어 이사가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심지어 어떤 업체는 이사하는 날을 고객님의 휴가일로 만들어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이삿짐을 싸고 정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이런 이사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이 물품 파손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 분쟁이다. 파손은 특히 무거운 가구나 가전제품에서 많이 발생한다. 우선 이사업체가 파손 책임을 인정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 A씨의 경우, 이사가 끝나고 이사업체가 모두 철수한 후에야 TV 액정의 파손을 발견하였다. 내부 패널에 압력이나 충격이 가해져 발생한 손상으로 전원을 켜기 전까지는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웠다. 곧바로 업체 측에 연락하여 이의제기하였으나 이사 중에는 파손이 일어날만한 사정이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업체 대표는 이사 완료 후 고객이 잘못하였거나 이사 전부터 파손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A씨는 일이 바빠서 이사 전후로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고 이삿짐을 옮길 때도 직접 지켜보지 못했다며 한탄했다.
B씨는 포장이사 후 7백만원이 넘는 고가의 냉장고가 손상된 사실을 발견했다. 문의 위치가 본체와 틀어져 제대로 닫히지 않는 하자였다. 냉장고가 운송된 후 곧바로 이의제기하였지만 업체 측에서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냉장고 문 곳곳에 찍히고 깨진 흔적이 있고, 제조사에 AS 문의한 결과 가정 내에서 사용 중 발생할 수 있는 하자는 아니라고 확인되었지만 업체 측에서는 시종일관 운송 중 발생한 파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리비 견적만 90만원이 나왔지만 업체 측에서는 억울하면 소송을 하라는 식이었다.
이사업체가 파손 책임을 인정해도 배상액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C씨는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나라에서 찻잔을 비롯한 도자기 제품을 수집해왔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 모은 백여점의 도자기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가족들이 함께 여행한 추억이 담긴 소중한 물품이었다. 포장 이사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각별한 주의를 수차례 당부하였고 계약서 상단에도 자기류에 대한 주의를 별도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이사 당일 사다리차를 이용해 물건을 내리면서 도자기들이 담긴 상자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C씨는 파손된 물품들은 각각의 구입가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에 이르고 일부는 이삼백만원을 주고 구입한 고가품도 있어 손해액이 5천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업체 측에서는 파손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C씨가 산정한 손해액은 터무니없다며 배상액 합의를 거부했다. C씨는 수십년동안 해외에서 조금씩 모은 것이므로 구매 증빙은 어렵지만 파손된 도자기 조각을 갖고서라도 전문가 감정을 받아 손해액 입증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업체는 C씨의 동의도 없이 파손된 도자기들을 상자 째로 폐기하였다며 물품 반환을 거부하였고 폐기 장소를 알려달라는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D씨의 경우, 결혼하면서 장만해 온 고가의 원목 침대가 이사 도중 파손 되었다. 이십여년 전 수백만원을 주고 구매한 고가의 수입 원목 제품이었다. 업체 측에서는 파손 책임은 인정했지만, 배상은 제조사 측에서 수리비를 확인해주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해당 침대의 판매처가 이미 오래전 폐업하였고 해당 브랜드가 국내에 더 이상 유통되지 않아 수리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업체 측에서는 이미 오랜기간 사용한 제품이므로 도의적 책임에 따른 보상을 얼마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지만, D씨는 원래 튼튼한 원목 제품인데다 소중하게 사용하였고 이사 도중 파손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오랜기간 계속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업체 측의 보상금은 턱없이 작다고 맞섰다.
위 사례들은 대부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소비자 측에서 민사소송 등을 진행하겠다고 나섰던 사건들이다. 포장이사 과정에서 물품의 파손이 발생하면 결국 입증 책임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고가의 전자제품이라면 이사 전에 업체 직원과 함께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이사가 끝나면 곧바로 다시 파손된 곳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물품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작동 및 외관 상태 등을 업체 직원과 함께 확인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사정상 여의치 않다면 혼자서라도 리스트를 만들고 이사 직전에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해두면 분쟁 발생 시에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사 과정에서도 포장이나 운송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직접 살펴보고 혹시라도 물품을 떨어뜨리거나 충격하는 일이 발생하면 곧바로 해당 직원의 확인서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 노트북과 같이 충격에 약한 물품, 보석과 같은 고가품, 가족 앨범이나 수집품과 같이 금전적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중품 등은 따로 직접 챙기는 지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