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한 TV 액정이 파손돼 있다면?
소비자 과실 주장한다면 입증 책임은 통신판매업자에 있어
[한국소비자원 이후정 차장, 부산소비자신문 2021.4.30. 게재]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이건 명백하다. 허나 어떤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항상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세상사 분쟁의 대부분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원인을 찾는 과정이 곧 분쟁 해결의 과정이기도 하다. 다음 사건을 살펴보자. 소비자는 인터넷 쇼핑으로 LED TV를 구매하였다. 며칠 후 택배로 배송된 상품을 직접 포장 개봉하여 설치 후 전원을 켰다. 그런데 화면을 켜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여러 갈래의 실금들이 액정에 나타났다. 원인은 셋 중 하나다. 처음부터 불량품이 출고되었거나, 택배 배송 과정에서 파손이 발생하였거나, 구매자가 포장 개봉하여 설치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거나.
상품 하자를 이유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자 판매자는 오히려 소비자 과실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상품은 엄격한 검수를 거치므로 불량품이 출고되었을 리 없다. 액정의 파손된 형태를 보건대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나 압력이 가해졌을 때 나타나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파손이 있었다면 포장을 개봉한 후 TV를 설치하지 않고 즉시 이의제기하였을 것이다. 전원 연결까지 하였다면 구매자가 설치 과정에서 제품을 떨어뜨리거나 쓰러뜨려 충격이 가해졌을 수 있다. 눈에 띄는 충격이 없었더라도 액정은 압력에 약하기 때문에 손으로 화면 모서리 등을 강하게 잡으면 이러한 파손이 발생할 수 있다.”
택배업체는 배송 중 파손은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LED TV와 같은 상품은 어지간한 외부 충격에는 파손이 생기지 않도록 완충 포장 처리된다. 안에 포장된 액정이 파손될 정도로 충격이 가해진다면 당연히 포장 박스에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상품 박스에는 찍히거나 찢기거나 눌린 흔적이 전혀 없다.”
구매자는 다음과 같이 항변한다. “액정의 파손은 전원을 켜기 전까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포장 개봉부터 설치까지 조심스럽게 다뤘으며 어떠한 충격이나 과도한 압력을 가한 사실이 전혀 없다. 따라서 원인은 여전히 판매자 또는 택배업체에 있다. 상품 출고 시 검수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만, 제조업체가 검수 과정에서 불량을 놓쳤을 수도 있다. 불량률이 완벽하게 제로인 상품이 어디 있나? 게다가 이 상품은 해외에서 제조된 중저가형 상품이므로 제조업체의 검수 과정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각 당사자들의 주장은 실제 처리하였던 사건들을 참고하여 가상으로 지어낸 것이다. 실제로 적잖이 접수되는 사례들이며,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공방이 벌어진다. 구매자가 배송 받아 직접 조립하거나 설치하는 가구 등도 이와 유사한 분쟁이 많다. 일단 포장 박스에 훼손이 없다면 택배 업체의 과실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자상거래법]에서는 재화 등의 훼손이 소비자 책임인지 여부를 두고 다툼이 발생한 경우 통신판매업자가 이를 증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법 제17조 제5항) 즉, 판매자가 소비자 과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초기 불량품이 없는 상품이 발송되었다는 사실은 입증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상품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구매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전자상거래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판매자는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통상 제조업체의 상품 검수 관련 문서, 불량품을 걸러내는 제품 출고 과정에 대한 자료, 상품의 포장 상태에 문제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자료 등을 많이 제출한다. 유사한 사건으로 다른 소비자와 민사소송을 진행하여 승소한 판결문이 제출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모든 자료를 확인하더라도 납득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많다. 구매자가 실수로 제품을 떨어뜨리거나 쓰러뜨렸다면 다른 누구보다 본인이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내 잘못도 아닌데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다시 거금을 들여 유상수리를 받으라 한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TV와 같이 파손 우려가 있는 상품을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한다면, 최초 택배 포장 개봉부터 설치까지 모든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두는 것도 만약의 분쟁에 대비하는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