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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3. 15:00

법보다 인터넷이 가까운 세상?
소비자 후기는 공익적 목적으로 사실만을 써야
[한국소비자원 이후정 차장, 부산소비자신문, 2021.2.26. 게재]


예전에는 다툼이 발생하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법률 서비스 비용은 ‘넘사벽’으로 비싸서 송사는 감히 엄두가 안 나고 폭력 등 범죄 행위에는 관대하던 시절 이야기다. 지인끼리 술 마시다 다투고 주먹다짐을 해도 서로 술 깨면 화해할 일이지 경찰이나 법원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식의 사고 방식이 통용되던 시절 말이다. 요즘이라면 큰일 날 소리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방위를 제외한다면-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주먹을 쓰는 순간 법이 얼마나 가까운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법보다 주먹”을 말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대신 요즘에는 “법보다 인터넷”이라는 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 심지어 기업과 기업 간에도 분쟁이 발생하면 법적 대응에 앞서거나 병행하여 인터넷을 이용해 피해 사실을 불특정 다수에 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구제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이러한 사례를 종종 경험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 과정에서 피해를 주장하는 소비자가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때 본인의 SNS나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고발성 글을 게시하는 것이다. 때로는 판매자가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대응하다가 소비자가 인터넷에 쓴 글을 발견하고서는 부랴부랴 해당 게시글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피해 보상에 합의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판매자가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아도 고객 만족 차원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보상할 의사도 있었는데, 소비자가 쓴 글이 사실이 아니고 피해를 부풀려 과다한 요구를 한다며 어떠한 합의 및 중재 절차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나와서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렵게 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소비자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피해가 객관적으로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점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자기 합리화에 능숙하다. 그렇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인터넷에 쓴 글로 인해 피해 보상은커녕 역으로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동생 결혼식과 관련하여 웨딩컨설팅 업체에 대한 허위 비방글을 인터넷에 올린 피의자가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사례가 있었다. 소비자 후기로 실형까지 선고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경우에는 피의자가 지속적이고 악의적인 방식으로 사업자에 대한 비방성 내용, 특히 사실과 다른 허위 사실을 포함한 글을 인터넷에 유포한 점이 인정되었다. 또한 사업자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받아 금전적 이득을 취한 사실이 있어 법원이 명예훼손, 영업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객관적 사실만 쓴다면 전혀 괜찮을까? 아쉽게도 문제의 여지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허위 사실은 물론이고 ‘사실의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인정되기 때문이다.(형법 제307조제1항) 공공연히 유포한 내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을 썼는데 그게 죄가 된다고? 예를 들어 당신이 친구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은밀한 고충이나 부끄러운 사생활을 털어놓았는데 만약 그 친구가 당신을 망신 줄 목적으로 그 이야기를 인터넷이나 단체 대화방에 공개적으로 써 올려 다른 지인들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친구는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겼지만 그로 인해 당신의 사회적 평판은 저하되었으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에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반대 여론이 커지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폐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법 개정 전까지 그렇다면 소비자는 인터넷에 상품 구매 후기도 나쁜 내용은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다. 법률에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한 행위가 진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형법 제310조)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소비자는 구매 후기나 소비자 피해와 관련하여 인터넷에 글을 쓸 때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겠다. 첫째, 허위 과장된 내용이 없어야 한다. 때로는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의견도 허위 과장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둘째, 공익성이 있어야 한다. 흔히 “이런 나쁜 업체는 망해야 한다”는 식의 문구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설령 속마음은 그렇더라도 글에는 다른 소비자들의 구매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익적 목적으로 쓴 것이라는 점이 잘 나타나야 할 것이다. 셋째,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나 모욕적인 내용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작정 인터넷에 글을 쓰기보다는, 주변에 믿을 만한 지인 또는 관련 공공기관 등에서 제공하는 법률 상담 서비스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언을 먼저 받아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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