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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3. 14:58

시대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소비자의 생각
브랜드 가치에 윤리적 정치적 기준 반영하는 소비자 증가
[한국소비자원 이후정 차장, 부산소비자신문 2021.1.29. 게재]


지금이야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과거 산업화가 한참 진행 중이던 시절에는 ‘소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만약 샀으면 최대한 아껴 쓰고 어떻든지 오래 쓰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극단적인 경기 침체에 빠지자 각국 정부는 내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나랏빚을 내서 국민들에게 나눠주며 소비를 장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재난지원금, 소비 쿠폰 등 유사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과소비를 죄악시하며 정부에서 근절 캠페인까지 벌이던 시대의 사람들이 본다면 뒤로 나자빠질 일이다. 특히 고가의 외제 수입품 구매는 국가 경제를 도탄에 빠뜨리는 반사회적 행위로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서울의 강남이나 부산의 신도시에 나가보자. 도로에는 과장 조금 보태서 외제 차가 반이다.

과거 수출 기업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국가 경제에서 내수 기업들이 증가하고 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소비는 내수 성장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바야흐로 소비자가 왕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가계 단위의 경제에서 절약과 저축은 여전히 필요한 삶의 자세이지만, 국가 단위의 경제에서는 근검 절약하는 소비자보다 왕성하게 돈을 쓰는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긍정적이다.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소비를 부추겼고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하게 되었다. 오죽하면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패러디까지 등장했을까.

문제는 아무리 소비를 장려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매력(돈)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타난 말이 ‘가성비’다. 가격 대비 성능, 즉 같은 가격대에서 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같은 가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품을 찾고, 같은 상품이라면 한 푼이라도 저렴한 판매자를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소비에 있어 정보의 탐색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이를 훌륭히 해내는 사람들에게는 ‘현명한 소비자(Smart consumer)’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앞으로는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불매 운동 몇 가지에 주목한다. 불매 운동은 먼 과거부터 심심찮게 있었지만 요즘처럼 효과적이었던 적은 많지 않았다. 최근 가장 사회적 반향이 컸던 것은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가 경제 무역 공격으로 대응하면서 2019년 불매 운동이 시작되었다. 단 1년만에 일본 맥주 수입량은 기존 대비 10%로, 일본 차 점유율은 1/3로 줄었다. 일본의 모 유명 패스트 패션 브랜드 기업은 임원이 불매 운동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타깃이 되어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국내 여러 매장을 폐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불매 운동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국민 감정이 개입된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례는 어떤가? 2013년 우리나라에서 절대적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던 유제품 가공 업체가 불매 운동의 타깃이 되었다. 본사의 젊은 직원이 대리점에 물건 밀어내기(강매)를 하며 나이 많은 대리점주에 심한 욕설을 한 녹음 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된 게 시발점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어떤 기업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불매 운동이 일어나도 그때만 반짝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시장 점유율과 영업이익은 꾸준히 하락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회사의 불매 운동은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다. 2013년 당시 이 회사 주가는 최고 1백1십만원을 넘었지만 2021년 1월 현재는 30만원으로 낮아졌다.

과거에는 반짝 불타오르다 금세 사그라졌던 불매 운동이 최근에는 기업의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공유가 활발해졌다. 기업의 부정적인 뉴스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에게 급속하게 확산되고 댓글과 토론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며 불매 운동과 같은 특정한 취지의 공감대를 쉽게 형성한다. 둘째,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었다. 이는 상품 선택에 있어서 가격이나 품질을 우선시하는 가성비 소비 외에도 기업의 도덕성이나 정치성이 기준이 되는 윤리적 소비, 정치적 소비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셋째, 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커졌다. 과거에는 물건만 잘 만들면 됐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그 브랜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브랜드의 로고가 찍힌 옷을 부끄럽게 어떻게 입고 다니냐며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도 실제 경험한 바 있다. 이처럼 브랜드 가치에 윤리적 또는 정치적 기준을 적용하는 소비자들은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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