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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11. 10:04

며칠 전에 친구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최근 주식시장이 요동치면서 말이 많아지고 있는 변액보험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의 사연을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다.

A는 1년 전 회사 고객이기도 했던 보험설계사로부터 좋은 펀드 상품이 나왔으니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보험사에서 운영하는 펀드상품이라 월 800원 정도의 보험료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전액 펀드에 투자되며 가입 후 3개월의 의무기간만 지나면 언제든지 환매할 수 있는 펀드 상품이라는 것이 A가 들은 설명이었다.

마침 펀드 투자를 고려하고 있던 A는 보험까지 된다는 그 상품에 가입을 결정했다. 그렇게 A는 월 20만원씩 총 240만원을 납부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해 환매를 하려고 보험사에 연락을 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가 가입한 상품이 펀드가 아니라 변액보험이므로 해약을 하면 납입 원금 240만원을 다 받지 못하고 73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한다는 답변이었다. 원금을 받으려면 7년 이상을 더 돈을 납입해야 된다고 했다.

워낙 돈이 급했던 그는 해약을 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보험설계사의 잘못된 설명으로 많은 손해를 본 것이다. A는 보험설계사가 변액보험이 아니라 펀드상품이라고 설명했으며 초기 사업비와 수수료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보험설계사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A회사의 다른 직원 4명도 해당 보험설계사에게 A와 같은 설명을 듣고 펀드상품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가입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단 정리하면, 가장 큰 문제는 보험설계사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상품에 대해 거짓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즉, 과일가게 점원이 수박이라고 해서 샀는데 잘라보니 호박이라는 상황이다.

친구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첫째 펀드를 가입하겠다면서 보험사 상품을 산 것이다. 그건 중국집에 가서 초밥을 먹는 짓이다.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펀드를 들려면 증권사에 가고 보험을 들려면 보험사에 가는 것은 짜장면 먹고 싶으면 중국집에 가고 초밥을 먹으려면 일식집으로 가는 것처럼 너무 당연하다. 간혹 중식도 하고 일식도 해서 손님을 끌려는 욕심쟁이 사장님이 있는 것처럼, 주식이 뜨니까 보험과 대충 결합해서 겉보기 그럴듯한 상품을 내놓는 보험사도 있을 것이다. 중국집에서 파는 초밥이 더 맛있겠다고 생각한다면 보험사에서 주식을 사든 채권을 사든 그건 자유지 뭐~ 할 말 있겠나?

둘째, 과일가게 점원이 아무리 수박이라고 우겨도 호박처럼 보이는데 수박이라고 믿고 산 잘못이다. 뭐냐면, 상품계약서에 변액보험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는데, 거기에 사인하면서 ‘펀드’라고 믿고 샀다는 것이다. 순진하거나 너무 긍정적이거나...

셋째, 가장 큰 잘못이자 모든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바로 금융상품에 가입하면서 약관이나 제공되는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처방전을 쓸 때는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글자도 휘갈겨 쓴다고 한다. 환자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환자들이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자신들의 전문적인 권위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보험사의 약관이나 설계서는 다른 이유로 매우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진다. 이들 역시 고객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무슨 고대어로 쓰인 마법 주문서와 같은 난해한 약관, 설계서 등을 만든다. 고객들은 약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계사의 설명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약관이나 설계서는 문서로서 오래 남아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지만, 설계사의 말이라는 것은 한번 흘러가면 그 뿐으로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적만 올리려고 거짓말을 일삼는 악덕 보험설계사가 사라지지 않으며, 사실 그들이 보험을 팔면 이득을 올리는 보험사도 특별히 그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약관과 보험설계서를 만드는 보험사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내 생각이 꼬인 걸까?

따라서 약관이나 보험설계서를 이해하지 않고 설계사의 말만 듣고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것은 누가 천원짜리를 쥐어주면서 “이건 지난번에 내가 너한테 꿔간 돈 만원이야”라고 말해도 믿겠다는 자세다. 신뢰 사회를 구현하는데 앞장서겠다는 숭고한 역사적 사명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제발 백 마디 번지르르한 말보다는 한 장 종이 쪼가리에 적힌 글자를 더 중요하게 여겨라.

어쨌거나 앉아서 돈을 150만원이 넘게 날리게 된 친구를 돕고 싶어서 관련 사례를 찾아 보았다.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의 문제 보험설계사는 해당 상품이 투자형상품(펀드)이고, 높은 수익이 날 경우에 엄청난 금액을 받을 수 있다며 소비자를 현혹했다. 2년은 의무기간으로 원금 보장되며 그 다음부터는 금액 상관없이 납입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고객이 솔깃한 말은 늘어놓지만 사업비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 소비자가 구제받기 힘들다. 왜냐면 보험설계사가 거짓 설명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A의 경우에는 동일한 보험설계사에게 같은 방식으로 같은 상품을 가입한 직장 동료가 넷이나 더 있기 때문에 해당 보험사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이 있는 금융감독원에 중재를 요청하면 구제의 여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소비자가 이처럼 정확한 정보 없이 또는 잘못된 정보를 통해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중요한 세가지 절차가 있다.

첫째는 계약서(약관, 상품설명서) 교부다. 이것을 고객에게 주지 않으면 그 계약은 무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주면 뭐하나~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잘 안 읽는 걸...

둘째는 계약서에 약관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지 여부를 묻는 난이다. 고객이 판매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경우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사실 고객을 위한 절차이기보다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사에 유리한 증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자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고객은 어떤 설명(심지어 거짓 설명이라도)을 들었던 간에 그것이 모두 진실이고 중요한 정보를 다 들었다고 믿고 서명을 하기 때문이다. 거짓 설명인지 중요한 부분이 빠졌는지를 서명하는 그 순간에 어떻게 알겠나? 나중에 문제가 생겨야 알겠지.

셋째는 왜 해피라는 단어가 붙었는지 알 수 없는 해피콜이다. 상품 가입 후 금융사에서는 상냥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묻는다. “약관은 전부 설명 잘 들으셨고요?” 고객은 이미 평생의 재정 컨설턴트로 봉사하겠노라고 비장한 각오를 보인 충성스런 보험설계사로부터 “전화는 형식적인 건데, 대답을 잘 해주셔야 제가 직장에서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라는 당부를 들은 터라 기분 좋게 예스 예스로 전화를 마무리한다. 뭐 말 좀 잘해주는 거야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뭐가 어렵냐는 후덕한 자세! 아주 좋다.

그런데 알고는 있나? 그 전화 다 녹취되고 있다. 나중에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상품이었는데 순전히 거짓말만 씨부린 양아치 설계사한테 속아서 돈을 날렸다고 분기탱천하여 보험사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 안쪽 상담실에서 듣게 되는 건 예스 예스를 남발한 자신의 목소리일 것이다.

결국, 이 세가지 절차는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고객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고객이 소비자원이나 금융감독원 혹은 법정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간다 하더라도 보험사가 두렵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고객이 계약을 무효화시키고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은 상품을 팔았던 보험설계사로부터 거짓으로 설명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는 수밖에... 그러나 그게 쉽겠나?

이렇게 말하니까, 보험사나 금융사들이 악마처럼 묘사되는 것 같다. 특히 많은 선량한 보험설계사분들을 싸잡아서 욕먹이는 것은 내가 의도하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건, 이런 문제는 우리가 수고를 조금만 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이다.

보험상품을 포함한 모든 금융상품은 내 재산을 지키고 보장하거나 때론 더 키우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삶을 지키고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상품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런 중요한 상품에 가입하면서 귀찮다고 또는 어렵다고 약관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하다못해 슈퍼마켓에서 계란을 하나 사더라도 이것이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 따져보는 게 우리나라 소비자 아니었던가. 소비자로서 자신이 돈을 지불하는 상품에 대해 조사하고 알아보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최소한의 것조차 소홀히 하고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금융사거나 보험사거나 그들은 봉사단체나 종교단체가 아니다. 이윤을 내기 위한 기업에 불과하다. 그들이 파는 상품은 결국 고객의 돈에서 이윤을 만들어 직원들 월급도 주고 정치인들 뒷돈도 좀 대주고 회장님 작은아들이 청담동 나이트클럽에서 마시는 한 병에 이백만원짜리 양주 값으로도 쓰이는 것이다.

소비자는 다만 그 많은 회사들의 그 많은 상품들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하고 이익이 되는 상품을 찾아내서 이용할 뿐이다. 사실 변액보험이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좋다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다만 변액보험이 원하지 않은 사람에겐 말 그대로 필요 없는 상품일 뿐이다. 마치 차 없는 사람에게 자동차 보험이 필요 없듯이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필요한 상품을 찾으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힘들게 번 돈을 의미 없이 퍼주고 말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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