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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30. 18:22

 

나꼼수가 비키니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개설된 웹사이트 ‘나와라 정봉주(http://www.freebongju.net)에 일부 시민들이 비키니를 입고 찍은 1인시위 인증샷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찍은 1인 시위 인증샷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바로 이 게시판에 몇몇 시민이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이죠. 이 사실이 모 인터넷 뉴스를 타고 알려지면서 그 뒤로 더 많은 비키니 1인시위 인증샷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는 1인시위 인증샷’의 해프닝 정도로 여겨지던 ‘비키니 인증샷’은 나꼼수 멤버들의 마초(?)적인 발언으로 인해 상황이 급반전합니다.

 

나꼼수 멤버인 주진우 시사인 기자(@jinu20)가 정봉주 전 의원을 면회하면서 작성한 접견민원인 서신에 "가슴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고 쓰고 이 글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하면서부터죠.

 

이것이 가뜩이나 웹사이트에 올라온 비키니 사진들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을 자극한 것입니다. 이들은 주진우 기자의 발언이 ‘성희롱’이라며 비난했습니다.

 

더불어 비키니 사태 이전 ‘나꼼수 봉주3회’에서 김용민 교수(@funronga)가 “정봉주 전 의원이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라”고 한 멘트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실 나꼼수 멤버들은 진작부터 정봉주 전 의원에게 수영복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을 농담(?)처럼 해왔었죠.

 

나꼼수를 지지하며 나꼼수와 친분을 과시했던 공지영 작가(@congjee)도 자신의 트위터에 "나꼼수의 비키니 가슴시위 사건 매우 불쾌하며 당연히 사과를 기다립니다"라고 썼습니다.

 

나꼼수 공연을 기획해왔던 탁현민 교수(@tak0518)는 트위터에서 나꼼수를 옹호하다가 급기야는 “트윗접습니다. 차이로 흔들리는 모습, 오해로 흔들리는 모습, 질투로 흔들리는 모습, 이해못해 흔들리는 모습. 무척 보기힘듭니다. 건강하세요 들.”이라는 트윗을 통해 트위터를 그만하겠다고 선언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상황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모습입니다. 정말 웹사이트에 올라온 비키니 사진들과 그 사진들을 두고 나꼼수 멤버들이 보인 반응은, 이런 상황을 불러올 만큼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사실 비키니 사태에서 나꼼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비키니 사진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비키니 사진이 정봉주 석방과 무슨 연관성이 있냐며 비키니 사진을 올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많지만요.)

 

문제를 제기한 의식 있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점은, 비키니 사진을 두고 “대박이다” 또는 “코피 조심하라”는 식의 반응은 여성의 성을 남성의 욕구(성욕) 해소의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봉주 전 의원에게 수영복 사진을 보내달라는 김용민 교수의 농담(?)조차도, 성욕 해소를 못하는 수감자를 위해 여성의 노출 사진을 보내라는 불순한 의도를 지닌 ‘여성 비하적’ 발언으로 함께 비난을 받게 된 것이지요.

 

꿀벅지, 초콜릿 복근이라는 단어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유통되며 핫팬츠 아래로 쭉 뻗은 다리와 걷어 올린 셔츠 안으로 보이는 식스팩에 환호하는 시대에, 비키니 사진을 보고 “대박이다. 코피 조심하라”고 한 멘트로 이런 대혼란이 찾아오다니... 나꼼수 멤버들은 억울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을 나꼼수 멤버들은 좀 더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어를 통한 성희롱은 말하는 사람이 무슨 의도를 지녔는가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직장 동료에게 “오늘 패션이 섹시하네요”라고 말했을 때, 듣는 사람이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칭찬이지만,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성희롱입니다. 이런 유연한(?) 잣대를 수긍할 수 없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성’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보편적으로’ 약자에 속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해 받아들여야 할 규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주진우 기자의 “코피 조심하라”라든지 김용민 기자의 “수영복 사진을 보내라”는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성희롱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문제가 제기된 초기에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사과한다.”고 말했다면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보다는 마초에 더욱 가까운 보통 남성입니다만, 이런 상황에 비판적인 여성들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이 사회는 아주 오랜 시간 여성에게 적대적이었고, 뜻 있는 여성들은 사회 기저에 깔린 ‘남성들의 여성 비하적인 무의식과 의식’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여 왔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성희롱을 놀이처럼 즐기는 ‘꼰대 보수’들의 세상에서 진저리를 쳤던 여성들이, 정치적 동지라고 여겼던 진보적 포지션의 인사들에게서 그토록 증오하던 ‘남성들의 여성 비하적 무의식과 의식’을 발견했을 때 느꼈을 분노와 배신감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비키니 사태에서 진짜 피해자는 나꼼수 발언에 성적 수치심을 느낀 여성들도 아니고 욕을 바가지로 먹은 나꼼수 멤버들도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발언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비키니 사진으로 나선 여성들은 이 사태를 보면서 어떤 기분일까요? 이 여성들이 진짜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황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찾으려는 노력만이 아니라,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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